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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에 꽂은 젊음
작성자 알짜돌이 작성일 2004. 4. 4. 조회수 4897
안나푸르나에 꽂은 젊음

모리스 에르조그 (1919~ )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 중부에 위치한 안나푸르나에 단 한 번의 시도로 깃발을 꽂은 산악인 모리스 에르조그. 1919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난 그는 유달리 산을 좋아해 여름방학마다 알프스 몽블랑 기슭에서 보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등산에 대한 열망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유명한 등산 안내자 가스통 레뷔파와 리오넬 떼레이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등산의 꿈을 실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에르조그에게 등산기술을 가르쳐 주며 함께 어려운 등반 수련을 쌓아 갔다.

그 즈음 유럽의 강대국들은 유럽의 산들을 정복한 이후 아시아의 히말라야에 대규모 원정대를 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42년째 K2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고 영국도 30년째 에베레스트에서 쓴 잔을 마시고 있었다.
1950년, 높이 7,500m가 넘으면 죽음의 높이라 하여 산소통 없이 등반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때, 에르조그의 등반대는 산소장비 없이 8,000m급 안나푸르나 제1봉을 향해 등반을 시작했다. 그러나 산소가 부족해 턱까지 숨이 차는 고통을 겪으며 6,900m 고지에 겨우 올랐을 때, 탈진한 대원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결국 대장인 에르조그와 루이 라슈날 단 둘이 마지막 길을 가야 했다. 7,400m의 비탈진 바위에 덮인 얼음을 도끼로 1시간 넘게 깨어 텐트를 치고, 30초에 한 번씩 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호흡 곤란에 심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두 사람은 포기하지 않고 정상을 향했다.

드디어 6월 3일 2시경, 문득 두 사람의 시야가 탁 트이더니 머리 위로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마침내 인류 최초로 8,091m의 안나푸르나를 정복한 것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하산길은 처참하기만 했다. 두 사람은 흰눈에 반사된 햇빛에 시력을 잃었고 동상에 걸린 손발은 자줏빛으로 변하여 나무토막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결국 베이스 캠프에 도착하자 라슈날은 다리를, 에르조그는 손가락과 발가락을 모두 잘라야 했다.

단 한 번, 31세의 나이에 안나푸르나에 오른 에르조그는 여덟 차례의 수술로 몸이 엉망이 되어 다시는 산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안나푸르나에서 체험한 것을 구술하여 <처녀봉 안나푸르나 8,000>을 썼고, 1958년 청소년 스포츠장관을 맡은 이래 국무장관, 유엔대표, IOC 위원을 지내며 프랑스 최고의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사람의 삶에는 또 다른 안나푸르나가 있다”고 말한 그의 도전정신은 산과 삶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월간 좋은생각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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